
디디에 에리봉 지음, 이상길 옮김, 문학과지성사, 2025
계급탈주자의 고백이라는 장르가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그런 장르의 책을 약간은 껄끄럽고 부끄러운 마음으로 사랑합니다. 계급탈주자는 아니지만 계급탈주자를 동경하는 사람으로서요. 우선, 제가 읽은 것으로 떠오르는 책은 현 미국 부통령이 쓴 ‘힐빌리의 노래’입니다. 세라 스마시의 ‘하틀랜드’도요. 타라 웨스트오버의 ‘배움의 발견’이나 데보라 펄드먼의 ‘언오소독스 – 밖으로 나온 아이’(이건 못 읽었어요)’도 떠오르지만 이건 좀 다른 성격인 것 같아요.
배움의 발견이나 언오소독스는 계급으로부터의 탈주라기보다 종교나 가부장 같은 권위로부터의 탈주 성격이 더 강한 것 같아요. 그래서 거기에는 계급으로부터의 탈주에서 느껴지는 수치심이나 죄책감이 좀 옅달까요?
서론이 길었죠? 계급탈주자의 고백이라는 장르 가운데 가장 제가 가장 좋아하는 책은
디디에 에리봉의 ‘랭스로 되돌아가다’입니다. 아, 이 책 이야기를 할 건 아니고요. 같은 작가의 ‘어느 서민 여성의 삶, 노년, 죽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랭스로 돌아가다가 아버지의 죽음 이후 고향 랭스 시절로 돌아가 자신이 속했던 계급사회를 회고하는 이야기라면, 이 책은 어머니의 죽음을 통해 어머니가 마지막 시간을 보냈던 요양원과 그 시간으로 돌아가는
이야기에요. 저는 어쩐지 이 어머니의 마지막 몇 주에 깊이 감응하고 말았는데요. 디디에 에리봉이 제 아무리 자신의 어머니의 삶을 되짚어본다고 해도 그게 결코 그녀의 것이 아닐 거라는 확신이 들었거든요.
저는 어떤 한 인간의 문제는 그가 자신의 이야기를 스스로 할 수 있는가 없는가로 나뉜다고 생각해요.
자신의 삶을 스스로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은 어떻게든 근사한 인간으로 남게 돼요. 스스로 이야기할 수 없는 사람은, 영원한 오해와 어설픈
이해 속에 남게 돼요. 저는 엄마와 저의 이야기를 쓴 적이 있습니다. 그 책을 쓰고 가장 오래 생각한 것은 이것은 내가 엄마에 대해 ‘잘못 한 이해’가 아닐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엄마의 언어로 스스로의 삶을 이야기할 수 있다면.
그것이 자기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흔히 하는 자기합리화나 자기연민을 담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런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도 생각했습니다.
디디에 에리봉은 자기 어머니의 삶에 대해 쓰다가 맨 마지막에 그렇게 묻습니다. “노인들은 말할 수 있는가” ‘랭스로 되돌아가다’가 빈곤노동계급으로 태어나 그것으로부터 탈주하는 과정에서(탈주하기 위해 애쓰면서)
느꼈던 여러 가지 감정, 자신이 속하고 싶었던 계급과 자신의 현재에서 느끼는 수치심,
자신이 속했던 계급, 가족, 이웃으로부터 멀어지는
데서 느끼는 죄책감 같은 정조들이 깔린다면, 이 책은 계급보다 노인이 된 서민 여성의 말년에 더 집중합니다.
신체적 자율성을 상실하고 요양원에 입소해서 살아가는 주체로서의 존재 말입니다.
남들에게 들리도록 소리를 낼 수 없는 존재. 단순히 자기 언어를 갖지 못한 것이 아니라 아예 ‘우리’라는 개념을 만들 수 없는 노인들이라는 존재의 자각은 우리 삶의 일부분, 모든 이가 한 번은
겪게 되는 일정 시기의 인간다운 삶의 요건이나 그 내면을 전혀 알 수 없다는 말이에요. 이건 제게 꽤 충격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저는 이 말이 전작인 디디에 에리봉의 전작과도 통하는 말이라고 생각했어요. 혹은 계급탈주자들의 책이 말하는 바와 어느 정도는 궤를 함께 하고요.
계급탈주자들은 대부분 하위 계급에서 상위 계급으로 올라갑니다. 재능과 열망이 그들의 동력이 되죠. 그 동력에는 아이러니와
복잡한 감정이 뒤섞이게 됩니다. 내가 벗어나고자 하는 계급에 대한 죄책감과 수치심, 다다르려고 하는 계급에 대한 선망과 열등감, 이 둘 사이를 계속 오가게 됩니다.
계급 탈주자가 하는 말들은 과거 자신의 계급에 기반한 이야기일까요? 아니면 새로
진입한 계급에 기반한 이야기일까요?
한없이 벗어나고 싶었던 그 계급 사회로 돌아가 그제서야 자신이 여전히 그곳에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디디에 에리봉처럼 그들이
내는 목소리는 어느 쪽에도 속하지 못하고 어느 쪽도 대변하지 못하는 목소리가 되는 것은 아닐까 싶었어요. 어머니가 보이는 인종차별과 성차별, 가부장 제도의 순응
같은 모습은 아랫 세대에 의해 관찰된 것이고 영원히 그들 자신은 그것에 대해 온전히 이해하고 말할 수 없습니다. 노인이 된 후에는 더하겠지요.
변화를 두려워하고, 아니 변화(대부분의 변화는 비관적이기만 한)를 기대조차 할 수 없는 그들이 맞닥뜨릴 미래는 어떤 것일까.
그 미래 속에서 그들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저자의 의도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노년의 삶 한 발자국 앞에서 선 저로서는 그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계급탈주자의 책은 언제나 제
관심을 끌 거에요. 그리고 그들이 어디에 서 있는지, 그들의 자리를
찬찬히 살펴보게 될 것 같습니다. 적어도 디디에는 그것을 과거의 남의 일이 아니라 현재의 나의 일로 만들
줄 아는 믿음직한 작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