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이 몽고메리 지음, 김홍옥 옮김, 돌고래, 2023
나이지리아 곰베에서 평생 침팬지를 연구한 제인 구달, 르완다 카리소케에서 죽을 때까지 고릴라를 연구한 다이앤 포시, 인도네시아 탄중푸팅에서 오랫동안 오랑우탄을 연구한 비루테 갈디카스. 이 세 연구자들의 간략한 일대기라고만 생각하면 뻔한 책처럼 느껴질 거에요. 그런 이야기들이 담겨 있죠, 물론. 이 세 사람의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이들이 연구에 매진할 수 있도록 돈도 보태고 이런저런 도움을 보낸 루이스 리키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고인류 연구에 평생을 바친 루이스 리키는 "대체 인간이란 무엇이며 어디에서 왔는가? 나는 누구인가, 지금의 나를 나로 만든 것이 무엇인가"를 평생 마음에 품고 살았습니다.
루이스가 발굴한 고인류 뼈들은 초기 인류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게 해줬고, 정교함에 따라 어떻게 움직였는지까지도 알게 해줬어요. 그와 동료 학자들이 발굴한 고대 도구들은 먼 과거의 우리 조상들의 문화를 짐작해볼 수 있게 해줬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행동은 화석으로 남지 않습니다. 루이스는 화석화된 인류의 뼈에 생명을 불어넣어 과연 우리가 무엇이며 우리를 우리로 만든 것이 무엇인지 알아보기 위해 인류를 가장 닮은 살아있는 친척들을 장기간에 걸쳐 관찰 연구하기로 했습니다. 그는 그 일을 할 사람으로 제인 구달, 다이앤 포시, 비루테 갈디카스 세 여자를 선택했습니다. 모든 이들이 의아해했죠. 전공자도 아니었고, 제인 구달은 학사 학위조차 없었으니까요.
루이스는 아기를 낳아 완전히 독립할 때까지 십 수 년을 키울 수 있는 인내와 헌신을 보아왔기에 여성들만이 그 일을 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니 이 책의 1부 제목이 "양육자들"이고 이 세 여성이 연구 대상과 양육자로서 정서적 유대감을 갖게 되는 과정을 담은 것이 우연은 아닐 테지요. 그렇다고 이 책의 내용이 환경과 자연, 동물과의 아름다운 연대를 따뜻하게 그린 그런 책이라고는 절대로 생각하지 마시길. 연구 대상이자 정서적으로 연결되어야 할 영장류들과 한 번 만나기도 힘든 상황과 열악한 환경 속에서, 또 정량적 연구가 대세인 과학 연구판의 배척과 자금 부족, 가정 불화 등 개인적인 문제에까지 시달리는 긴긴 세월이 펼쳐집니다.
지금은 상식으로 받아들여지는 영장류들의 도구 사용이나 의사소통 같은 발견들이 모두 이들의 오랜 연구에 의해 알려진 것이며 그 전까지만 해도 전혀 모르던 사실이었다는 게 신기합니다. 하지만 이 책에서 제가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다이앤 포시가 맞닥뜨린 한 장면이었습니다. 다이앤 포시는 고릴라를 비롯한 각종 동물들을 잡으려는 밀렵꾼들과의 갈등이 심했고, 그 때문에 비극적인 죽음을 맞았습니다. 특히 보통 10여 마리 정도로 이루어지는 고릴라 그룹의 유대감은 정말 단단해서 어린 새끼 한 마리를 생포하기 위해서는 그 한 마리를 제외한 나머지를 전부 죽여야만 합니다. 고릴라 가족을 지키기 위해 다이앤은 독해져야만 했습니다.
매일 고릴라 서식지 근처를 돌며 덫을 제거하고 밀렵꾼들을 생포하러 다니던 어느 날, 다이앤은 갈라진 나무 가지 사이에 끼어 오도가도 못하게 된 물소를 보게 됩니다. 밀렵꾼들은 그 물소의 뒷다리를 베어갔고, 그 물소는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었습니다. 다이앤은 그 물소의 고통스러운 비명을 들으며 눈물을 머금고 소에게 총을 쏘아야만 했습니다. 그 지역 사람들은 그런 다이앤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들에게 삶은 인간뿐 아니라 살아있는 모든 것들에게 고통스럽고 잔인한 것이었습니다. 저는 문명은, 연민이 나로부터 점점 퍼져나가는 것이라고 믿어왔습니다. 그러니, 그 지방 사람들의 이런 태도는 야만적인 태도라고 얼굴을 찌푸릴 만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렇게 말하는 것이 훨씬 간단하고 속시원할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저자 사이 몽고메리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저는 나무 사이에 끼어 벗어나지 못하고 괴로워하는 물소의 뒷다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베어가는 지역민들과 그 물소의 고통을 볼 수 없어서 안락사 시키는 다이앤 사이에서 인간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이 책이 너무 산만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여성적 글쓰기라는 게 따로 있다는 말에 화를 내는 사람도 있지만 저는 '여성적 글쓰기'는 분명히 존재하고 그것의 가치가 너무 저평가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세 사람이 연구하고 그 연구를 알리고, 그 과정에서 그들이 어떻게 했는지는 각자의 성격과 그들이 연구했던 환경과의 교류를 통해 저마다 독자적인 방법을 택했고, 사이 몽고메리를 그걸 아주 섬세하게 짚어냅니다.
이 책에 저는 밑줄도 많이 쳤는데, 한 페이지만큼은 몇 줄이 아니라 그 한 장 전체가 너무 좋아 접어둔 페이지가 있습니다. 종이책으로 235쪽이에요. 꼭 한 번 읽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