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다반사

시애틀 코리안 북 소사이어티

제목일과 나2026-09-13 22:49
작성자 Level 10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일을 하며 보낸다. 그런 만큼 '일'과 '나'는 분리되기 어렵다. 요즘 젊은 세대는 일은 일이고 나는 나, 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풍문'만 들었다. 일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일 뿐이고, 그렇게 번 돈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하는 내가 진짜 나라고.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고개가 갸우뚱해지곤 하는데, 내가 꼰대라서겠지? 하여간 옛날 사람인 나는 일을 통해서 사회에 기여하고 있다는 효능감과 타인의 인정 등을 얻는다. 주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내 일은 손님의 피드백과 반응에 무척 예민하다. '손님은 왕'이라는 말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손님이 하는 부정적인 말이나 반응을 보거나 들으면 나도 모르게 움츠러들곤 한다.


내가 직접 음식을 하는 건 아니기 때문에 음식 맛의 피드백에 대해서는 대체로 만족하지 못했다면 미안해, 어떻게 해줄까 하고 선선히 대응하는 편이다. 식당을 연 초기에는 투고해간 음식에 대해 항의하는 전화를 받거나 직접 반응을 접하면 마음에 상처를 입곤 했다. 어떤 손님은 음식을 들고 와서 열어 보이면서 "내가 상상한 건 구운 치킨 위에 테리야키 소스가 있는 거야. 그런데, 소스는 어디갔니?"라고 포장 용기를 내 앞에 던지듯 내려놓았다. 속으로 그렇게 만든 건데, 뜨거운 치킨 위에 뿌린 소스는 흘러내리기 때문에 안 뿌린 것처럼 보이는 것뿐이라는 말을 설명할 수가 없었다. 손님이 보는 앞에서 치킨 위에 소스를 잔뜩 뿌려주었지만 만족한 표정은 아니었다.


또 어떤 손님은 자기가 시킨 건 이게 아니었다며 왜 다른 걸 주었냐고 전화를 걸어 화를 냈다. 하지만 전화 주문을 받을 당시의 상황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에 당신이 주문한 걸 주었는데요? 당신이 몇 번을 달라고 했잖아요? 라고 계속 내 입장을 고수했다. 사람은 억울한 걸 가장 견딜 수 없다는 걸 그때 알았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이런 타박을 듣고 있는 거라고 생각하니 억울하기 짝이 없었고, 전화에 녹음기라도 달아야 하나 분통이 터졌다. 손님은 화를 내다가 "너 나랑 지금 논쟁하자는 거야?"라고 한 마디 했는데, 그 순간, 아, 하는 깨달음이 왔다.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은 손님과 논쟁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그 뒤로 손님의 항의에 대응하는 방법은 한 가지다. 무조건 사과하고, 뭘 어떻게 해줄까 묻는 것. 직원들에게도 그렇게 이야기한다.


그 이후로 무조건 그렇게 한다. 한 번은 전화 주문을 한 손님이 왔는데, 바로 전에 온 손님과 음식을 바꿔서 주었다. 바로 전 손님이 바로 떠났기에 뛰쳐 나가 음식을 가져왔다. 그들이 음식에 손을 대지 않았다는 걸 확인한 후였다. 그들 음식은 물론 다시 가져다 주었고. 그 손님은 내가 준 음식을 집어 던지더니, "안 손댔다고? 내가 들어올 때 그 손님들이 주차장 차에 있어서 내가 봤는데, 그 사람들 이 음식 포장을 벗겨서 들여다 봤다고." 항의하면서 굳은 얼굴로 나갔다. 돈을 되돌려 받지도 않았다. 씩씩대며 나가는 손님은 우리 가게에 오랜 단골이었다. 순간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판단이 안 되고 왜 화를 내지, 그냥 이야기하고 나 이거 먹기 싫다, 다시 만들어달라, 아니면 환불해야달라고 하면 될 텐데..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은 나중에 우선 행동부터. 재빨리 통화기록을 찾아 손님에게 전화를 했고, 미안하다고, 몰랐다고, 다시 만들어줄 테니 돌아오라고 사정을 했다. 다행히 손님이 되돌아왔다.(배가 고파서였을까) 새로 만든 음식을 받아가지고 나가는 손님은 다시 전화해줘서 고맙다고 했다. 아마도 홧김에 나갔지만 나가자마자 후회했던 모양이다. 돈은 이미 지불했고, 나는 배고픈데 음식도 못 가져왔다고 생각하면 말이다. 감정은 항상 합리적인 사고 한 발 앞서 들이닥친다. 그들의 감정을 다독이는 건 재빠른 고개 숙임뿐이다. 그 덕분에 그는 여전히 우리 단골이다. 아마 그대로 떠났다면 다시 오지 않았겠지. 처음에는 왜 손님들은 화를 내는 걸까. 자신이 지불한 돈에 대한 정당한 서비스를 받지 못해서 라고 하기엔 우리 음식 값은 너무 헐값 아닌가.


또 그들이 원하는 게 화풀이가 아니라 식당에 온 목적, 맛있는 음식을 합리적인 가격에 먹고 싶다, 라면 타협안을 내놓으면 될 텐데. 환불이라든가, 새 음식이라든가. 하지만 나도 알고 있다. 사람들은 대개 자신의 기대가 어그러졌을 때 가장 먼저 분노가 치밀어오른다는 걸. 그걸 조금만 참으면 곧 합리적인 사고가 작동하기 시작한다는 걸 그 당시에는 모른다. 이렇게 마음 수련을 했지만 그럼에도 사람들의 부정적인 피드백을 받는 건 언제나 마음을 덜컹 내려앉게 한다. 하지만 이것도 경험치라고 이제는 제법 억울함이나 서운함을 잘 다스리게 되었다. 그 첫째는 세상엔 다양한 사람과 취향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우리는 똑같은 조리법과 과정을 거친 음식을 제공한다. 어떤 손님은 그게 맛있다고 하고, 어떤 손님은 별로라고 한다. 우리 가게에 아침마다 두부볶음밥을 한 개씩 시켜 먹는 손님이 있지만(맛있으니까 시키겠지?) 어떤 손님은 두부볶음밥의 두부가 너무 딱딱하다고 구글 리뷰에 별점을 짜게 준다. 어떤 손님은 소고기 테리야키를 잔뜩 남기고 가지만 어떤 손님은 소고기 테리야키만 시킨다. 우리 음식을 좋아하는 손님은 남고, 좋아하지 않는 손님은 떠난다. 떠나는 손님을 잡으려고 레시피를 바꾸면 좋아하던 손님들은 어떻게 될까? 모든 사람들을 만족시킬 수는 없다. 우리는 그저 우리의 일을 충실히 하면 된다. 그러다 보면 그 충실함이 결국 우리의 힘이 된다.


최근에 한 손님이 도어대시로 주문을 하고 항의 전화를 했다. 자신이 오늘 두 번이나 똑같은 메뉴를 시켜 먹었는데, 아침 건 정말 완벽했지만 저녁 것은 너무 엉망이었다고. 이런 음식 팔면 안 된다고 너희 부엌에 알려주려고 전화했다고 했다. 나는 선선히 미안하다고 말하고, 어떻게 해줄까 물었다. 환불을 원하면 환불을 해주겠다고. 도어대시 환불은 까다롭지만 - 라이브챗을 해야 한다 - 환불 절차를 밟았다. 도어대시는 내게 물었다. 

"환불의 이유가 뭐야?"

"손님이 만족하지 못했대."

"손님 의견에 너도 동의해?"

"응. 우리는 손님 만족이 제일 중요하거든."

"알았어. 환불될 거야"

예전이라면 불만족한 손님이 있다는 사실 때문에 상처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나는 전혀 상처받지 않는다. 우리 음식이 최고라는 건 아니지만 늘 똑같이, 제대로, 위생적으로 우리 절차에 맞게 제공된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그걸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건 손님의 문제일 뿐이다.


일 자체가 내가 될 수는 당연히 없다. 일 때문에 자신을 돌보는 일을 소홀히 하거나 전부를 희생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일을 잘 해내는 것이 나의 일부를 만들 수 있다는 것, 일을 잘 해내는 것으로 나의 어떤 부분을 채울 수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일은 내가 아니라며 하는 일을 소홀히 한다면, 그걸 할 수 있을까? 어느 순간이든 나를 떳떳하게 느끼는 자부심 같은 게 일을 열심히 하지 않고도 생길까? 나는 일에 책임을 느끼지 않는 것, 그래서 잘 하려고 노력하지 않는 것이 걱정된다. 그렇게 만들어진 어떤 힘이 나의 일부를 이루어 삶의 다른 영역에도 영향을 미칠 거라고 믿기 때문이다. 좋아하지 않는 일일지라도, 꼭 원하는 일이 아니더라도(좋아하고 원하는 일이라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어쨌든 일하는 데 쓰는 시간이 꽤 큰 데, 돈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 외에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면 아깝지 않나? 반전. 온라인으로 음식을 배달시키고 항의했던 손님은 여전히 배달 플랫폼을 왔다갔다 하며 우리 가게에 음식을 시키고 있다.

댓글
자동등록방지
(자동등록방지 숫자를 입력해 주세요)
Scroll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