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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육체노동이라는 것2026-06-21 23:27
작성자 Level 10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는 말은 동서고금에 통하는 금과옥조로 여겨진다. 그렇지만 정말 그렇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을까? 책상물림을 하다가 식당업을 시작했을 때, 뭔가 몰락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스스로 그렇게 느끼기 때문에 더 과장되게 아무렇지 않은 척 너스레를 떨었지만 그 몸짓이 클수록 어쩌면 내 마음속에는 더 큰 저항이 있었는지도. 우리나라처럼 문(文)을 숭상하는 나라에서 상업은 농사보다 천한 일로 여겨졌고 나 역시 그 자장 안에 있었다. 처음 식당업에 뛰어들 때는 계산대 앞에서 돈이나 받고 시간이 남으면 책이나 읽고 그러다 심심하면 생각나는 대로 뭘 끄적거릴 수도 있겠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다른 뇌를 쓰는 일이니 양쪽에 모두 도움이 될 거라고도. 순진한 망상이었다. 


식당업을 시작하고 남편이 완전히 이주해오기 전까지 혼자서 식당을 운영했다. 주인의 가장 큰 일은 식재료 장을 봐오는 일이었다. 가정집에서 보는 장과는 차원이 달라서 식당 장보기는 기본이 박스 단위다. 나무젓가락 한 박스 같은 건, 그만한 크기의 나무 둥치나 다름없고, 빈틈없이 차곡차곡 겹쳐진 양배추가 그렇게 무거운 야채인 줄 처음 알았다. 굴소스나 삼발올렉 같은 1갤런들이 액체 캔이 6개씩 든 박스들은 12-13킬로그램을 훌쩍 넘는다. 살 때는 이 많은 걸 언제 다 쓰나 싶지만 사다 나르기 무섭게 없어지기 때문에 거의 매일 이런 규모의 장을 봐야 했다. 배달을 시키는 방법도 있지만 예상할 수 있듯이 비싸다.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키 순서로 정하는 학급 번호에서 4번을 넘어본 적이 없고, 대학교 1학년 때까지 몸무게가 40킬로그램이 안 됐다. 이 작고 마른 몸은 나의 은밀한 자부심이기도 했다. 가느다란 팔목과 남들 손목만 한 발목, 만성 빈혈로 핏기 없는 흰 얼굴은 여자애들에게 격려되는 신체적 특징이면서 문약의 상징이었다.  이 하찮은 육체노동조차 난생처음 해보는 내겐 버거웠다. 매일 덩치가 크고 힘이 센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한국에 있는 지인들과 안부를 나누며 몸이 힘들다는 이야기를 했다가 "그래도 마음은 편하잖아요" 라는 위로(?)를 들었다. 분명히 위로였을 것이다. 그 진심을 의심하지 않으면서도 그 말이 그렇게 서운할 수가 없었다. 


육체 노동을 대하는 태도는 참으로 이중적이다. 신화화와 비하를 오간다. 길에서 육체노동자를 보며 "너도 공부 안 하면 저렇게 되는 거야"를 시전하는 어른들이 있는가 하면, 한편으로는 신성한 노동 운운이다. 많은 사람들이 좋아한 드라마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는 드라마는 정말 좋아하기 어려운 드라마였는데, 그 가운데 시인으로 나오는 주인공의 형이 사람들에게 "사는 목적이 뭐냐?"며 마치 내가 너희의 삶의 목적이 옳은지 그른지 판단해 알려주겠다는 듯 구는 태도가 무척 거슬렸는데(주요 주인공들이 자신만이 인생의 고뇌를 짊어지고 있다는 듯 거대한 자기연민의 구덩이에 빠져 있는 것도 별로), 그가 문학수업 수강생들에게 강연을 하는 자리에서 자신이 납땜을 하면서 쉰다는 이야기를 하는 장면을 볼 땐 정나미가 뚝 떨어졌다. 그건 다른 삶을 선택할 수도 있는 사람들이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굽어보며 하는 말 같았다.


모든 노동은 본질적으로 육체 노동이다. 인간은 몸을 가진 존재니까 당연하다. 일을 하면서 긴 시간 같은 자세를 유지하거나 반복적인 패턴의 행동은 몸에 흔적을 남긴다. 책상 앞에서 모니터를 보며 일하는 사람들은 허리나 목 디스크를, 하루종일 스캐너로 바코드를 찍어야 하는 식료품이나 잡화점 직원들은 손목 통증을 앓는다. 공사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다양한 형태의 부상에 시달리고, 운동선수들은 온동 종류에 맞게 팔과 다리, 신체 근육의 배치가 달라진다. 과도하게 쓰는 근육이나 관절들이 문제를 일으키키도 한다. 내가 잘 모르는 다른 직업들 역시 우리 몸에 어떤 식으로든 흔적을 남길 것이다. 말할 것도 없이 육체노동자들도 정신을 안 쓰지 않고. 그러니 사실상 육체노동이니 정신노동이니 구분은 무의미해 보인다. 몸은 힘들지만 마음은 편하다고? 그럴리가! 육체 노동을 신성시하는 것도 비하의 다른 형태다. 


일은 우리를 벌어 먹이는 일이면서 한편으로는 우리의 유용함과 삶의 의미를 주기도 한다. 귀천이 없고 모두 신성하다고 하지만 일은 그런 걸로만 구성되지 않는다. 선망이나 평가 등도 포함된다. 우리 모두 상호 합의하에 모른 척하고 있지만 알지 않는가. 박완서 선생님이 어느 도서전인지 시상식인지에 가서 여러 문인 후배와 동료들을 만났던 날 이야기를 기억한다. 초여름이라 마당에 무성한 잡초들을 뽑다가 서둘러 간 자리에서 손톱 밑에 때처럼 낀 검은 흙을 누가 볼까봐 악수를 청하는 이들을 피해 다녔다는 이야기. 클로락스와 주방용 세제를 매일 만지고 주무르는 내 손은 아주 거칠다. 아무도 청하지 않을 악수를 누군가 청하면 어쩌나 지레 위축된다. 락스가 튀어서 어딘가 흰 반점이 있는 옷을 입고 누군가를 만날 때의 머쓱함. 식당 일을 하던 초기 뜨거운 수프를 옮기다 넘어져서 크게 덴 적이 있다. 내 양팔에는 그날의 덴 자국이 남아 있다. 삶은 그런 모양으로 그저 몸에 새겨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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