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세희 지음, 현대문학, 2026
소설을 읽다가 울어본 경험 있나요? 제가 울었던 책을 떠올려 보니,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가 가장 먼저 떠오르네요. 몇 년 전, 노르웨이 여행길에 단체 관광 버스를 타고 가면서 읽다가 줄줄 울었습니다. 주인공 이름이 우리 아들 이름과 같아서 더 깊이 감정이입한 걸까, 싶기도 한데 마지막 부분을 읽으면 울지 않을 도리가 없습니다. 그 외에 백발백중 저를 울린 작가는 조해진 작가에요. '단순한 진심', '로기완을 만났다'를 읽는 동안 여러 번 울컥했고, 이번 신간 '우리 세희' 역시 여러 번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조해진 작가는 늘 경계에 있는 사람들, 어딘가에 속하지 못한 채 부유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에게 늘 관심을 기울입니다. '단순한 진심'이 입양인들 이야기를, '로기완을 만났다'가 제3국으로 망명한 탈북인 이야기를 담은 것처럼 '우리 세희'는 자이니치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화자는 제이비 류라는 예술가를 취재하러 간 기자 연주입니다. 연주의 어머니는 일본인도 한국인도 아닌 자이니치입니다. 자이니치에 대해 조금이라도 아신다면, 우리에게 알려진 가장 유명한 자이니치 가족의 이야기가 이 책의 뼈대를 이루고 있다는 걸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오빠를 북에 보내고 북에 방문한 이야기를 다큐멘터리로 만들어 널리 알려진 양영희 감독님(화자 연주 어머니의 이야기와 겹친다), 한국의 간첩 조작 사건에 휘말려 30년 넘는 수형생활을 한 형으로 인해 마음 고생했던 서경식 선생님(연주의 엄마인 세희의 지인 이야기와 겹친다), 제주 4.3 와중에 가족을 잃고 일본으로 탈출해 살아남은 시인 김시종의 이야기(제이비 류의 가계 이야기와 겹친다)가 얽혀 있습니다. 소설 줄거리보다 저는 이 책의 제목이 책이 시작하던 시점에 이미 죽고 없는 화자 연주의 어머니 이름이라는 사실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지난 해 OTT를 휩쓸었던 '폭싹 속았수다'에 대한 여러 비평들 가운데 1950년대 제주도가 배경인데, 4.3이 전혀 등장하지 않은 것에 대한 비판이 있었습니다. 저는 70년생이고, 제주 4.3 사건을 스무 살이나 되어서야 어렴풋이 알게 되었으므로 특별히 더 큰 관심이 있지는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이 책을 읽는 동안 한 인간이 그 시대의 역사와 배경, 맥락을 제거한 채 그냥 가족 안에서만 한 개인으로 존재할 수 있는가 하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어요. 그런 측면에서 제주도를, 또 그 시기를 배경으로 하면서 그 사건을 빼고 넘어가서는 안 됐다고, 어떤 것 때문에 그런 결정을 했든 비겁하고 게을렀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세상에는 어떤 것으로부터도 영향 받지 않는 순수한 것이라는 게 존재할 수 있나 생각하거든요. 저는 요즘 사회가 어떤 이상적인 자연인이라는 대상을 만들어놓고 개개 인간을 거기에 비추어 인간을 분류하고 있지 않나라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우울증에 걸린 사람, ADHD인 사람, 가스라이팅 당한 사람, ***에 트라우마를 가진 사람, 어떤 일을 겪은 사람 등등. 완전 순수한 인간이라는 게 존재할 수 있는가, 존재한다면 우리는 그걸 지향해야 하는가, 어떻게든 거기에 도달해야 하는가, 그런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어찌 됐든 나는 훼손되었다, 훼손되지 않은 상태의 내가 진짜 나라는 생각은 두 가지 방향으로 나아갑니다. 하나는 내게서 이런저런 경험을 제거하고 치유하면 순수한 인간이 될 거라고, 혹은 내게 이런저런 일이 생기지 않았더라면 나는 순수한 인간이었을 텐데.. 앞의 경우는 자기계발, 심리 상담, 자아 성찰 등 여러 시도로 자신을 변화시키려고 하고, 뒤의 경우는 내게 이런 시련과 상처를 준 저 사람과 이런 상황을 미워하고 원망하면서 자신을 건드리는 모든 것에 예민하게 반응합니다. 저는 상처를 포함, 상처를 다루는 나의 모든 행위의 결과로 나라는 사람이 만들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 책의 제목이 이미 존재하지 않는 화자 윤주의 엄마 '세희'가 제목인 것이 좋았습니다. 그건 우리 몸에 새겨진 어떤 것들을, 그것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슬프고 억울한 것까지도 하나도 잃지 않겠다는 결심 같았거든요. 그것도 '우리' 세희라니. "숨이 멎는 날까지 내 피와 뼈에 저장된 그들의 이야기는 한 줌도 분실되지 않으리라" 아픈 엄마 곁에서 되뇌던 말, '잊지 않아'라는 말과도 연결되요. 이미 사라지고 없는 것들, 내가 경험하지 않은 것까지도 껴안겠다는 결심은 불완전하고 훼손된 인간 존재를 그 자체로 인정하겠다는 의미 아닐까요? 우리의 지금 상황은 과거 어느 시점의 선택과 결단으로부터 비롯되었습니다. 선택과 결단을 하던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은 현재의 결과를 예측하지 못하고요. 살아가다 보면 우리는 수많은 경험들을 통과해요. 그것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우리가 경험하지 않은 것까지 받아안은 개인들이 이런 사회를 이루고 살아간다는 것을 생각하면 아마도 우리는 조금 너그러워질 수 있을 거에요. 꼭 한 번 읽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울고 싶은 날이라면 더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