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른트 하인리히 지음, 강유리 옮김, 윌북, 2026
읽었고, 읽으려고 하는 책들과 그에 대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쌓여 있지만 좀처럼 뭔가를 쓸 짬이 나지 않는다. 의지 박약과 간절함의 빈약이 이유겠지만 무엇보다 마음의 여유가 문제다. 그러다 이 책의 출간을 인터넷 서점 첫 화면에서 봤다. 여기 쓰는 거의 대부분의 책들에 대해 아마도 '이 책을' 혹은 '이 작가를' "사랑한다"고 쓰게 될 테지만 베른트 하인리히를 사랑하는 마음은 조금 더 각별하다. 베른트 하인리히의 책은 대체로 훌륭하고 거의 대부분 번역이 되었지만 책의 운명이 그렇듯, 빠른 속도로 절판된다. 하인리히의 책 역시 그렇다. 내가 처음 베른트 하인리히의 책을 진지하게 읽은 것은 2011년에 출간된 <아버지의 오래된 숲>이었다. 그 책이 좋아 지금까지 하인리히의 책을 모두 구했으며 어떤 것을 읽고 어떤 것은 아직 못 읽었지만 언젠가는 다 읽겠다고 마음만 먹고 있다. 번역된 책 가운데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은 절판된지 한참 된 <까마귀의 마음> 한 종뿐이다.
<아버지의 오래된 숲>이 왜 그렇게 좋았을까? 부모를 한 인간을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일은 모든 인간에게 가장 어려운 일이다. 나는 그 책이 하인리히가 가족에게 무심하기 이를 데 없었으며 별로 성실하지도 않았던 아버지의 삶을 비로소 똑바로 바라보기 시작한 책이라 좋아했던 것 같다. 결국 자연 연구자라는 비슷한 길을 걷게 된 후에야, 아버지의 삶을 회고하고 어쩔 수 없이 연민과 이해로 한껏 기울어진 마음으로 그 삶을 더듬었다. 거기엔 나치 집권이 시작된 후 독일 근방에서 살면서 아버지가 겪었을 윤리적 갈등과 그 갈등 앞에서 자식으로서 받아들일 만한 선택을 했다는 사실에 안도하는 장면이 나온다. 왜 그렇게 그 장면이 오래 기억날까? 윤리적 딜레마 앞에 선 부모가 한 어떤 결정은 자식들에게는 오래 짐이 되기도 하고, 자부가 되기도 한다. 늙거나 이미 세상을 떠난 부모를 회고하는 일은 어쩔 수 없이 어느 한 쪽으로 기울게 마련이지만 과학자였던 그는 비교적 객관적이려고, 냉정하려고 노력했기 때문에 그 책을 더 좋아했다.
그가 새 책을 펴냈다. 잘 알다시피 그는 나이 마흔에 정교수 자리를 버리고 숲 속으로 들어가 숲과 자연을 연구했다.(아니 그냥 사랑했다) 그의 나이는 이제 여든 여섯, 어쩌면 이 책이 마지막 책이 될지도 모른다. 그는 오랫동안 달리기를 했고 오랫동안 숲에서 살았으니 아마 평균 이상으로 건강해서 더 오래, 더 많은 책을 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가 여전히 숲에서 자신의 호기심을 건드리는 생물을 발견하고, 사랑하고, 그에 대해 연구하고, 그에 대해 글을 쓸 거라는 걸 안다고 해도 지금 쓴 이 책이 덜 중요해지지 않을 것이다. 나는 지금 사이 몽고메리의 <유인원과의 산책>을 읽고 있는데, 그 책을 다 읽고 나면 이 책을 읽을 것이다. 영장류를 사랑한 여성 학자 셋과 숲과 숲을 터전으로 살아가는 동식물들을 사랑한 학자의 글은 잘 어울릴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