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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박지훈 싱글 앨범을 샀다.2026-06-19 12:51
작성자 Level 10

최근에 박지훈 싱글 앨범을 샀다. 원래 나는 정규 앨범이 아니면 잘 안 산다. 같은 값인데, 한 앨범에 10곡 정도는 들어 있어야지. 이제 가수들은 거의 앨범을 만들지 않는다. 그러니 앨범을 사는 일도 드물어진다. (박지훈 이전 가장 최근에 산 앨범은 약동뮤지션의 신보) 그런 와중에 달랑 3곡(총 시간이 10분도 되지 않는다. 요즘은 노래 한 곡의 길이도 짧아져서)이 들어 있는 박지훈의 싱글 앨범을 샀다는 것은, 박지훈군을 좋아하고 응원하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박지훈군을 알게 된 건 1600만이 본 '왕과 사는 남자' 덕분이다. 훌륭한 연기에 반했고, 그후 그가 가수라는 걸 알았다. 그 전 노래는 모르겠고 최근에 나온 노래 'Bodyelse'를 들었는데, 나 같은 할머니(?)가 듣기에도  나쁘지 않아 유튜브에서 공식 뮤비 외에도 여러 무대에 선 모습을 찾아본 후에, 앨범을 주문했다. 요즘 앨범들은 왜 이렇게 화보를 넣어주는지 모르겠다. 나 같은 사람 입장에서는 참 처치곤란이다. 한 번 훑어보고 꽂아놓긴 했는데, 20대 후반 남자 아이돌의 화보를 들여다보고 있는 할머니라니... 좀 그렇지 않나.


그리고 '약한 영웅 클래스 1'를 봤다. 나는 원래 폭력 장면을 잘 못 견딘다. 특히 남자가 여자를 때리는 장면, 어른이 아이를 학대하는 장면 같은 걸 못 본다. '약한 영웅'은 어쨌든 폭력이 주요 소재라서 인구에 회자될 때도 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는데, 배우 박지훈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라니.. 하고 봤다. 폭력 장면이 나올 때 괴로웠지만 저건 진짜가 아냐.. 나 자신을 잘 달래면서 봤다. 시즌 2는 안 볼 거 같고 - 시즌 1이 우정, 질투, 시기, 친밀감, 열등감, 어떤 것이 소중해지는 과정, 소중한 것을 아끼는 마음, 그로 인한 분노와 좌절 등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서 생겨나는 감정에 대해서 잘 보여줬는데, 다 봤다, 충분하다는 기분이 들어서다. 물론 박지훈군의 연기는 훌륭했다. 원래 말을 세게 하거나 행동을 크게 하는 캐릭터의 연기는 과대평가되기 쉬운데, 이렇게 누르는 연기를 하면서 보는 사람을 홀리기는 쉽지 않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보는 사람의 눈길을 끄는 비주얼도 큰 몫을 했겠지만.


말하고 보니 부끄럽다. 박지훈군은 내 큰 아이보다 한 살이 어리고 둘째보다는 한 살이 많다. 딱 아들 또래라는 얘기. 아이돌을 좋아하기에도, 그 대상을 이성적 감정을 담아 보기에도 나는 너무 늙었다. 그래서 좋아한다, 고 말하기가 꺼려진다. 하지만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것. 나는 삶을 살아가는 데 이것보다 더 나은 걸 아직 못 찾았다. 우리가 살아가기 위해서는 뭔가를 좋아해야만 한다. 어떤 과일이나 날씨 같은 것 말고 사람을 좋아해온 역사도 길고 길다, 친구들을 제쳐두고라도. 아이러니컬하게도 나는 내 또래의 남자 아이돌을 좋아해본 적이 없다. 극성 아이돌 팬덤이 형성되던 90년대 초반을 살았는데도. 그럼에도 누군가를 끊임없이 좋아했는데, 주류를 좋아했던 건 고등학생 때 강변가요제 대상을 받았던 이상은이 유일했고, 중국과 한국의 탁구 선수(다른 애들이 다 농구 선수를 좋아할 때)를 좋아하거나(내게는 탁구 선수 현정화에게 받은 친필 편지와 엽서가 있다), 가수 중엔 조규찬과 박학기, 윤도현 밴드의 공연을 열심히 보러 다녔다. 30대가 되어서는 루시드 폴을 좋아했는데, 겨울이면 그의 공연을 가는 게 나의 1년 루틴 중 하나였다. 


답장을 받을 정도로 편지도 많이 쓰고 지금 생각하면 이불킥 각의 부끄러운 짓도 많이 했지만 그래도 좋아하는 동안 행복했다. 배우로는 황정민을 좋아했는데, 지금 같은 대배우가 되기 전, 연극과 뮤지컬로 이름을 날리다 영화계에 나온지 얼마 안 되는 시점이었고 나는 결혼을 해서 큰 아이가 유치원, 작은 아이가 유치원에 가기 전 시기였는데 이때는 일도 못하고 육아에 전념하고 있던 때라 나라는 사람 자체로 보자면 가장 무기력한 시기였다. 나는 황정민을 좋아하는 힘으로 그 시기의 무기력을 지나왔다고 생각한다. 이 시기에 비로소 온라인 팬클럽이라는 게 팬덤의 기본적인 형태로 자리잡았는데, 프리챌이 커뮤니티 서비스를 시작했던 그 시기, 프리챌 커뮤니티와 다음 팬클럽에 가입해 글도 열심히 쓰고 아직 바빠지기 전의 황정민 배우와 오프모임을 갖기도 했다. 황배우는 내가 동갑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나를 매우 깍듯하게 대해주었는데, 늘 어린 후배들을 대하듯 나를 막 대해주기를 바라면서도 그럴 수 없다는 것도 잘 알았다.


몇 번 음악방송을 찾아본 것만으로 유튜브 알고리즘은 자꾸 내게 박지훈 관련 쇼츠들을 추천해준다. 아침 출근길에 온갖 박지훈 쇼츠들을 본다. 그러면서 대중문화를 즐기는 방식의 변화에 대해 많은 걸 알게 됐다. 어린 시절 나는 조규찬 앨범을 사서 듣다가 꽃과 편지를 들고 공연에 갔다. 공연이 끝나면 수줍게 꽃과 편지를 전달하고 설레는 마음을 안고 집에 돌아온다. 그게 전부였다. 그걸로 충분하기도 했고. 그런데 지금은 앨범을 사서 음악을 듣는 것만으로는 어쩐지 충분하지가 않다. 유튜브나 매체의 퍼포먼스, 각종 홍보활동을 보거나 팬들이 편집한 쇼츠(소스는 다양하다, 출연 드라마들, 음악프로그램, 개인 라이브 방송, 개인 팬들이 찍어온 직캠, 하여간 그가 지나온 모든 자취)를 보고 그 밑에 달린 팬들의 '주접' 댓글을 읽는 것(아주 중요!)까지가 완성이다. 앨범의 음악을 듣는 것만으로는 어쩐지 허전하다. 그래서 그를 더 잘 알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고 한편으로는 그렇게까지 잘 알아야 하나 싶기도 하고.


나처럼 뭔가에 그럴 듯하게 의미 부여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요즘처럼 이야깃거리가 많아진 만큼 좋아하는 이런 저런 이유를 더 다양하게 달 수도 있다. 그리고 모든 사실들은 나만의 필터를 통과해 자기확신을 계속 강화해갈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뭘 좋아하는 데는 이유가 없다. 이러니 저러니 하는 것은 모두 사후에 붙은 사족들일 뿐이다. 각별히 이처럼 가닿을 수 없는 것을 사랑하는 마음의 오묘함에 대해서도 생각한다. 가까이에서 마땅히 사랑해야 할 사람들과 달리 그들과는 사소한 갈등이나 오해가 쌓일 일이 없으니까 그들에 대한 감정은 '좋아함'에서 온전하고 무구하다. 오늘도 변태처럼 박지훈 쇼츠에 붙은 주접 댓글들을 읽는다. 이 정도면 성희롱인데 싶은 아슬아슬한 댓글들도 그 재치를 부러워하면서. 나도 그들 중 하나라고 일체감을 느끼면서. 나는 이게 좋다. 어떤 걸 좋아하는 데는 이유가 없다는 거. 이유없이 그저 사랑하는 거. 그냥 예쁜 걸 보면서 좋아하는 거. 사랑하는 방식과 형태가 달라져도 그것만은 같다는 게 말이다. 거기서 살아갈 힘이 조금이라도 생긴다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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